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루살렘 왕국 (문단 편집) === 배경 =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십자군 전쟁)] 11세기 말 [[로마 가톨릭]] [[교황]]은 [[신성 로마 제국]]과의 주교 서임권 분란 및 [[카노사의 굴욕]] 이후 황제의 보복, 교회 내부의 갈등 등 복잡한 현안들에 둘러싸여 사실 상 방랑 생활에 직면했다. 마찬가지로 [[동로마 제국]]의 처지 역시 [[교황청]]과 다를 바 없이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. 11세기 초 황제 [[바실리오스 2세]] 치세의 힘입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는가 싶더니 그의 죽음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. 그 서막은 [[1071년]] [[소아시아]]의 만지케르트에서 벌어진 [[셀주크 튀르크]]와의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소아시아 지역 대부분을 상실하며 시작되었다. 결국엔 황금만을 사이에 두고 제국 수도 [[콘스탄티노폴리스]]가 이슬람과 대치하는 암울한 지경까지 몰리는 상황이었다. 게다가 세상의 중심 [[예루살렘]]은 이미 몇 세기 전 수니파 이슬람 세력의 수중에 들어가 같은 이슬람인 시아파와의 각축장이 되어 있었다. ||<:>[[파일:Tiedosto:1581 Bunting clover leaf map.jpg|width=100%]] || || 중세시대 예루살렘은 세상의 중심이었다. || 제국의 국토가 구멍 난 풍선처럼 쪼그라들면서 덩달아 황권 역시 바닥을 쳤고, 제국 동부의 실세였던 땅 잃은 유력 가문들 사이의 남 탓 공방에 외부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. 이리저리 치이던 제위는 굴러다니던 끝에 [[1081년]] [[알렉시오스 1세|알렉시오스 콤니노스]]가 신임 황제가 됐으나 제국을 괴롭히고 있던 대내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. 이러한 상황에서 제위에 오른 [[알렉시오스 1세]] 황제는 제국의 존립을 위해서 종교적으로 철천지원수였던 서유럽에 공식적인 지원을 요청했다. 교황 [[우르바노 2세]]는 [[1095년]] 3월 [[이탈리아]]의 피아첸차에서 열린 성직자 회의에서 [[동로마 제국]]의 사절단을 접견했다. 사절단에 들려 보낸 서한에서 알렉시오스 1세 황제는 “이방인들이 [[콘스탄티노폴리스]] 성벽에 도달하는 대부분 영토를 점령했 노라”고 한탄하면서 “이교도들에게 맞서서 성스러운 교회를 수호할 수 있도록 지원군을 보내 달라”고 간청했다. 사절단을 통해 [[동로마]] 황제의 읍소를 경청한 교황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[[소아시아]]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교황권 강화로 이용해먹기 위해 즉시 행동으로 나아갔다. 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여러 지방을 직접 방문해 자신의 의향을 내비쳤다. [[서유럽]] [[수도원]] 운동의 중심지로서 한때 자신이 수도원장으로 있던 [[클뤼니 대수도원]]을 축성하는 극적인 장면까지 연출했다. [[우르바노 2세]]는 치밀한 계획자였다. 일련의 준비과정을 거친 후 마침내 [[1095년]] 11월 말에 프랑스 클레르몽에서 개최된 공의회에서 이 문제를 노골적으로 이슈화했다. 그는 [[이탈리아]]와 [[부르고뉴]], [[프랑스]] 등지에서 온 주교 및 기사가 참석한 이 자리에서 성지 탈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. 교황은 청중을 마주한 연단 위의 옥좌에서 일어나 연설을 시작했다. 동방의 그리스도교 형제들이 이교도 이슬람 세력에 의해 고통당하고 있으며, 무엇보다도 지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인 [[예루살렘]]마저 이교도들에게 훼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. 결론은 하루속히 무기를 들고 가서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고 성지를 탈환하자는 것이었다. 이에 대해 청중으로부터 우르바노 2세조차 예상하지 못한 열띤 반응이 일어나 “하느님께서 그것을 원하신다('''DEUS LO VULT''')”[* 단, 이 문장은 [[라틴어]] 문법상 비문인데, LO라는 단어가 고전 라틴어에 없기 때문이다. 이는 아마 [[로망스어]] 대명사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며, 고전 라틴어 문법에 맞게 고치자면 Deus id vult가 된다.]라는 거대한 함성이 클레르몽 성당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. [[우르바노 2세]]는 그 시점에 하인 한 명에게 성당 천장에서 창문을 열게 하여 한줄기 빛이 찬란하게 쏟아져 내리는 극적인 장면도 연출하여, 회의는 이미 [[천국]]의 열쇠를 얻은 듯 광란의 도가니로 변했다. 이날로부터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천여 명의 군대를 예상했던 황제는 자신이 꿈에서도 상상 못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서유럽인들이 십자군을 비롯하여 병자 임산부 가릴 것 없이 10여만 명이 떼거지로 지중해 동부를 향해 꾸역꾸역 몰려갔다. 바야흐로 [[십자군 원정]]이 시작된 것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